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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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안식 조회수 : 767, 2010-06-20 17:35:42
강광선목사


이역 땅에서 인생의 한 계획을 위해 이곳에 있는 우리들로서는 크게 절기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만큼 이곳의 삶의 내용이 여유있지 않다. 대신에 이국의 삶이 어떤지를 느끼는 면에서 성경에서 말하는바 “너희는 행인이요 나그네요 고향찾는 사람들” 이라는 말씀의 의미인 하늘의 고향, 하늘의 안식을 바라보는 신앙이 되라는 내용은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나온 후 광야생활에 거할 때 종종 이집트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곳이 광야의 생활보다는 나았기 때문이다. 현 시대의 신자들은 어떠한가? 우리의 본향인 예수님이 설립한 나라에 가기 원하는가? 우리 주님은 그 나라를 신자들에게 주시기 위하여 죽음을 당하셨다. 그 만큼 가치 있는 나라다. 가치가 있는 만큼 성경은 예수님이 그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그것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하였다. 그러므로 안식을 얻기 원하는 자는 내게 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불행이도 예수님이 그러한 말씀으로 전도한 것과 오늘의 전도 방법과는 많이 다르다. 성경은 하나님을 믿으면 세상에서 필요한 것을 얻는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성경은 하나님을 믿으면 오직 그의 나라를 얻는다는 것과 그의 나라에 있는 것을 얻을 것을 약속하셨다. 또한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셔서 이 땅에서 하늘의 자원을 갖고 생활할 수 있는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이 신자들에게 희망을 갖게 하는 방법은 하늘의 안식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리고 비신자에게 하나님을 믿게 하는 큰 방법이 안식이 우리에게 있다는 도전이요 안식을 받지 못하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과연 하늘의 안식을 전한다면 얼마나 효과있는 증언이 될것인가? 이 세상이 자신에게 최상의 추구하는 것처럼 사는 방식을 보이며 살았다면 우리가 하늘의 안식을 전할 때에 누가 믿겠는가? 마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당시 세상의 멸망의 위급함을 말했을 때 그의 사위들처럼 농담으로 여기지 않겠는가?  또한 세상의 위급함을 전한다 할지라도 성경에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을 전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어 구원을 얻게 하는 방편으로 그 전한 말씀이 사용되겠는가?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늘에서 안식할 때가 있다는 것으로서 이 세상을 넉넉하게 이기며 사는 도전을 받아야 한다. 또한 주위 사람들에게 이 말씀으로 도전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의 안식, 우리가 힘쓰는 모든  일로부터 쉬는 안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우리의 약함에서 나오는 모든 노력으로부터의 쉼, 죄와 죄의 감정으로부터의 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쉼을 우리는 바라보며 기다리며 이 땅에서 살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이요 복음이 주기를 원하는 마음이요. 예수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한 예수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그 나라를 우리들에게 주는 것을 기뻐한다고 하였다.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우리는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것에서 기쁨을 갖지 않고 힘을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 그 나라에서 안식하는 약속이 이 시대를 사는 신자들에게 그들이 하고 있는 모든 일에서 참된 위로요 기쁨이요 소망이 되는 것이다. (히4:1)에서 그 안식이 남아 있다는 말씀이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한다. 사도 바울이 그런 이유에서 그의 최선의 삶을 살았다고 다음과 같이 고백한 것이다. (딤후4:7,8)“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갈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자에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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